고소에 극단적 선택…신고자만 불이익 받는 '직장 내 괴롭힘'

입력 2021-06-03 10:18   수정 2021-06-03 10:26


"처음엔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하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상식 이하의 괴롭힘이 지속되고 동료들로부터 그가 너를 욕한다는 연락을 계속해서 받았습니다."

경기 오산의 한 제조업체 사원 김모씨(29)의 이야기다. 김씨는 지난 1년 간 상사 A씨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겪었다며 지난 3월 그를 고소했다. 지난달 말 경기 오산경찰서는 부하 직원을 모욕·명예훼손한 혐의는 받는 A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신고자만 불이익...괴롭힘에도 호소할 곳 없어
김씨에 따르면 A씨는 '한번 더 실수하면 남자친구한테 말할거니 (남자친구의) 전화번호를 대라'고 하는 등 수치심을 주는 언사를 동료들 앞에서 반복했다. 김씨가 자리에 없을 때는 그에 대한 뒷담화와 욕설을 일삼았다.

김씨는 "내가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것을 두고 '회사에서는 이렇게 먹으면서 집에서는 양푼으로 처먹겠지 돼지같은 X'이라고 하며 외모를 비하하거나 직원들 앞에서 나를 '사이코'라고 모욕하는 등 지난 1년간 수시로 괴롭혀왔다"고 호소했다.

수 개월 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김씨는 점차 심리적으로 위축됐고, 결국 정신과에서 중증의 우울증, 무기력증,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회사에 신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기대했지만 소용없었다. 김씨는 "처음엔 사측이 가해자를 옹호해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징계를 했다"며 "징계 수위도 턱없이 부족했고 팀을 바꾼 뒤에도 A씨의 조롱과 괴롭힘이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해도 10명 중 7명 '불이익'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시행됐지만 여전히 일터에서는 위계를 이용한 폭언, 갑질 등 괴롭힘을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 네이버 직원이 경기 분당 소재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평소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익명 게시판 등에서는 해당 직원과 일했던 임원이 평소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노조와 유족 측은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업무상 재해"라는 입장을 냈다.

지난 3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조사한 결과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는 응답자가 전체의 32.5%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가운데 35.4%는 자신이 겪은 갑질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신고자 중 71.4%는 피해 사실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신고 후 근무조건의 악화나 따돌림,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겪었다는 이들도 67.9%였다.

전문가들은 조직 내 여전히 존재하는 위계적 문화와 조직의 화합을 중시하는 집단지향적 문화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은 생산성을 중시하고 경제적 이윤을 얻는 집단이다보니 자칫하면 인간을 도구화하기 쉽다"며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집단중심 문화는 괴롭힘을 방조하는 이른바 '방관자 효과'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독립적인 외부 감사제도를 강화하고 신고자, 피해자를 대하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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